미국 이야기

리치몬드와 남북전쟁

다린이아빠 2015. 4. 29. 12:43

리치몬드 하면 홍대 근처에 리치몬드 빵집이 기억이 나는 데 - 지금은 망했지만 -


채플힐에서 워싱턴 가는 길에 Richmond 가 있습니다.


어쩐지 부자들만 살 것 같은 곳이지요.


처음에 미국와서 가장 미국다운 워싱턴에 간다고 갔을 때 진짜 지겨워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의 고속도로는 그래도 주위가 다 보이고 배경이 있는 데

이곳 미국은 배경은 온통 나무로 가리워져 길 옆이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무가 없어도 나무 뒤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4시간 반인가를 가는 데 거의 7-8 시간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채플힐과 워싱턴 사이에 있는 유일한 도시가 바로 Richmond 였는 데 우리 동네에는 없는 높은 건물도 보이고

삐까번쩍한 빌딩도 있고 강도 보이고 그래서 잠시나마 운전 중 피로를 풀 수 있었는 데


워싱턴 뿐 아니라 뉴욕 갈 때도 항상 지나가는 곳이 Richmond 였는 데


이번에 지나가는 것이 아닌 직접 가기로 하였습니다.


Richmond 는 버지니아 주의 주도 입니다. 미국에서 주도는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닙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주도가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새크라멘토 입니다.


제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도 제일 큰 도시는 샬럿이지만 주도는 저희 집 근처의 랄리 입니다.


Richmond 는 인구가 약 20만 정도로 한국 도시라고 해도 큰 도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곳이 과거 150년전 남북전쟁 'Civil war' 때 남군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북군의 수도가 워싱턴임을 감안하면 지금 차로 약 2시간 쯤 걸리니 사실 서울과 평양 사이의 거리보다도 더 가깝습니다.


남북 전쟁 중 수많은 전투가 Richmond 근처에서 있었고 또 북군이 마지막으로 정복한 지역 또한 Richmond 되겠습니다.


1865년 4월 3일 남군의 대통령이었던 Jefferson Davis 가 당시 수도였던 Richmond 를 포기하고 도망하고 그로 부터 40시간 후

Lincoln 이 Richmond 로 와서 Jefferson 의 사무실에 앉습니다.


그 때 Lincoln이 자신의 작은 아들 (Tad, 그 때가 그의 12번 째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 의 손을 잡고 Richmond 를 둘러봅니다.


아직 잔여 남군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는 데 참 용감하지만 조심성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때 방문 시 주위의 흑인들은 Lincoln 을 보고 무릎을 꿇고 감사해 합니다. 그 때 Lincoln 이 말을 합니다.



When another man knelt, Lincoln said to him, “Don’t kneel to me. . . . Kneel to God only and thank him for your liberty,” 

“My poor friends,” the president told the crowd. “You are free — free as air. You can cast off the name of slave and trample upon it. It will come to you no more.”

( 원작의 감동을 살리기 위해 원문으로 )

아무튼 그후 Lincoln 은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그 곳에서 남군의 장군인  Lee 로 부터 항복했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 정확히 5일 후 Lincoln 은 암살당하고 맙니다.

남북전쟁은 최초의 현대전으로  무기는 엄청 발달되었는 데 군사 작전은 나폴레옹 때 처럼 수행하여 ( 막 그냥 전진 ) 사망자 수가 엄청 났습니다.

당시 미국 인구 3000만명 중에서 60만명이 죽었다고 하니 남자 군인 만으로 전체 인구의 2%가 사망 한 것입니다.

사실 남북 전쟁은 노예 문제 때문에 생긴 갈등으로 일어난 것은 맞는 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남측에서 플란테이션 농업을 하면서 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2% 정도 밖에 안 되었다고..

나머지 80% 정도는 노예를 가진 적이 없는 중소 자영 농민이었는 데 노예제 반대는 오히려 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다고.

전쟁도 선거도 경제적인 이득 보다는  정치관 가치관의 싸움이라는 사실..

말이 길어졌는 데 리치몬드를 보면 


                        --> James 강, 이 강을 경계로 북군과 남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듯. 도로 밑에  현수교 다리가 또 있슴



                        --> 그 현수교 다리를 통해  Belle Isle 로 들어 갈 수 있슴. Belle Isle 은 강 가운데 섬인데 남북 전쟁 당시 포로 수용소였다고



                                    --> Belle Isle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경치가 좋음. James  강에서 래프팅도 함



                            --> 리치몬드 근처의 격전지. Gaines Mill 전투에서는 불과 6시간만에 사상자가 15000명이나 나왔다고 함.


그런데 남북 전쟁 시 남군의 대통령이 었던 Davis 나 장군이었던  Lee 모두 그냥 여생을 살았다고 하네요. 특히 Lee 장군의 경우는 감옥에도 안 갔다고.

이런 정책 때문에 미국이 통합이 더 빨리 된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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