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애 엄마와 백화점에 갔다가 특이한 식품을 발견하였는데 그 이름은 올방개 묵
먹어 보니 맞은 그저 그랬지만 나와 올방개와 특이한 인연을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었었는데……
때는 약 20년 전 청운의 꿈을 품고 (시골은 아니고) 청주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서 1학기를 보내고 여름 방학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 맞는 여름 방학에 나는 농촌 활동(농활)을 가기로 하였는데…. 그 때의 기억은 다른 선배들 처럼 – 혹은 채영신, 박동혁 처럼- 농촌에 대한 거대한 희망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 뭐 농촌에 가서 뭔가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머리를 맑게 하고 오겠다는 – 육체적인 노동이 우리 몸을 힘들게 하면 어쩐지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어 득도를 할 수 있고 또 앞으로 펼쳐질 힘든 세상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 목표가 있었다.
농활의 목적지는 안성이었는데 벼농사를 많이 한다고 하고 또 가서 하는 일은 벼농사 일이 될 거라고 선배들이 이야기 하였다.
벼농사 하면 ‘피살이’ 아니겠는가? 국사책에서 본 조, 피 ,수수 기타등등을 본 기억이 있는데 실제로 난 피를 본적이 없었다. 괜히 피를 뽑는 다고 하면서 멀쩡한 벼를 뽑으면 안 되었기에 그 당시 최고의 백과사전 – 결국 이 것 만들고 망하고 말았지만 – 도서관에 가서 동아 원색 대백과에서 피를 찾아 보고 어떻게 생겼는 지도 확인하고 준비를 했더랬다.
농활을 떠나는 날 남부 터미날 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었는데 신촌역에서 ‘ 헌혈 좀 하세요’ 라는 헌혈차 앞 아가씨 앞에서 당당하게 ‘ 우리 피 뽑으로 가요’ 라며 말했던 것도 준비에 대한 자신감의 반향이었다.
아무튼 안성에 도착해서 비닐 하우스에서 잠을 자며 일을 하기 위해 우린 준비하였고 마을 어르신의 환영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우린 가자마자 ‘빨갱이’란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해야겠다는 우리와 그냥 집에 가라는 마을 주민들과 실갱이를 해야 했다. 지금은 서로 모셔 갈려고 한다지만 그때는 그랬다. 물론 나중에 마을을 떠날 때 마을 이장님이 그 당시 상당히 큰 돈인 10만원을 수고했다고 주셨다고 한다.
마을의 본격적인 일은 도착하고 나서 3일 째인가 시작 되었는데 나는 역시 예상대로 논 농사일에 투입되었다. 선배 형 누나들도 내가 얼굴이 일은 잘 하게 생겼는지 조장까지 시켜주었다. 거머리에게 물리지 않도록 스타킹을 신고 논에 들어가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피’ 가 보이지 않았다. 마을 형들에게 ‘ 이것이 피 아니예요?’ 라고 물으며 은근히 칭찬을 받으려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 어 피 그건 농약으로 간단히 죽지 ‘ 아니 벼와 사촌인데 어떻게 피가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는 건지 더구나 ‘ 피살이’ 라는 고유 명사가 있을 정도로 피는 벼의 대표적 적이 아니었던가?
‘ 어 그럼 할 일이 뭐죠?’ ‘ 어 이놈 제거 하는 거, 올방게 ‘
그랬다. 우리의 주적은 올방게였다. 수초 비슷한 거 였는데 바닥에 쫙 깔려 있었다. ‘ 얘는 농약에 안 죽나요? ‘ ‘ 얘는 농약으로도 안 죽어, 일일이 다 뽑아주어야 해’
--> 바로 올방게 잘 죽지 않는다
농사일이나 육체적 노동일을 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겠지만 공부하는 것 보다 정말 집중이 잘 된다 ( 나만 그런가? ) 나는 조장인 관계로 타의 모범을 보여야 했으므로 또 선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또 같이 온 동기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올방개들은 끝이 보이지 않고 결국 그날 저녁에 허리가 하루만에 고장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는 선배들이 비닐하우스에 들어와서 못 눕게 했다. 눕게 되면 나태해져서 봉사하러 온 참 의미가 퇴색한다는 것이었다. 한 여름에 뙤약볕 아래 땀을 그렇게 흘리고 샤워는 커녕 눕지도 못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가끔씩 그 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10일을 한 여름에 샤워를 안하고 버티었을까 하는 생각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도 문제 였는데 장소가 바뀌면 일 보기가 어려운데 동네 공동 화장실은 정말 깨끗하지 못 해 그냥 참았다. 소변이야 아무데서나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농활 휴유증으로 변비가 생기는 사람도 많았다. 세수와 양치질은 비닐하우스 앞 냇가에서 했는데 한 5일이 지나서야 그 상류에 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 교회를 다녔던 한 선배 형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입에서 나온 것 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없다’ 그러니까 성경을 인용하여 네 입에서 나오는 물보다는 냇물이 깨끗하니 그냥 그 물로 양치질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샛는데 아무튼 나는 3일이나 더 논에서 올방게를 제거하는 일을 했고 허리는 더 아파왔다. 그 때 같이 갔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야 어떻게 하면 올방게를 없앨 수 있을까?’
‘ 의학적으로 정력에 좋다고 연구하여 발표해 볼까?’
‘ 아냐 그러면 사람들이 더 키울 거야. 저렇게 농약을 먹어도 잘 자라는데 그러면 우리 국토가 모두 올방게로 뒤덮힐 거야 ‘
‘ 그냥 우리가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버릴 것이 아니라 약초나 식용으로 사용 될 가능성은 없을까? 그러면 우리도 돈을 벌 수 있고 일 할 때 신나지 않을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 지 밤에 자는 데도 꿈에 쫙 펼쳐진 올방게 숲이 눈에 그려졌다. 나는 3일 만에 선배들에게 이야기 해서 다른 일로 바꾸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래도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그 때 과수원에 간 다른 조 애들은 과일도 얻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과일을 따는 것은 허리를 펴고 하는 일이라 구부리고 올방게를 제거하는 것 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고생 시켰던 – 나는 방학이 짧았던 본과 3 학년 때를 제외하고 매년 농활을 갔다 – 올방게,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올방게를 이렇게 조우하고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음식물 중에서 가공되지 않은 것이 혈당을 덜 올리고 우리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다이어트에 관한 글에서 많이 소개했다. 정제된 쌀 보다는 현미, 밀가루도 하얀 색 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것이 좋다는 것이다. 원시 시대 이후 우리 몸에 그렇게 맞춰져 있는데 최근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변한 것이다.
농약에도 안 죽는 올방게, 최고의 자연 식품, 어쩐지 몸에 엄청 좋고 정력도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 사진 올리고 보니 중국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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