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이롭게 하라
-‘이린(利隣)’을 풀이함-
제자 김의혁이 둘째 아이를 낳아서 작명을 청해왔다. 이름은 평생 쓸 것이므로 함부로 지을 것이 아니라 사양했으나, 이미 첫아이의 이름을 지은 터라 사양치 못하고 또 짓게 되었다.
그 이름을 ‘이린(利隣)’이라고 한다. 언니의 이름을 ‘다린(多隣)으로 한 것은 이웃이 많기를 소망한 것이므로, 이제 그 뒤를 이어서 이웃을 이롭게 할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리(利)’의 글자는 매우 뜻이 깊어서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린(隣)’이 귀한 낱알을 가지고 오가는 사람들의 뜻임은 익히 알고 있을 터, 낱알이 많아지면 어찌될 것인가? 당연히 ‘이(移)’라는 글자가 생기게 된다. 이 글자는 낱알이 무거워져서 옆으로 옮겨진 형국인 것이며, 그로써 주위가 이롭게[利]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다린’이라는 이름에 그 풍성한 곡식으로 많은 이웃들이 함께 하는 아름다움이 담겼다면, 이 ‘이린’이라는 이름에는 자기가 거둔 수확을 이웃에 옮겨 함께 넉넉하게 하는 덕스러움이 담겨있다.
그러나 ‘리(利)’에는 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만물이 나서, 자라고, 결실 맺고, 거두는 이치를 지니는 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천도(天道)의 네 가지 원리 중 리(利)가 바로 그 세 번째인 것이다. 원형이정은 곧잘 사계절에 비유되는데, 리(利)는 그 중의 가을이다. 봄이 만물의 시작이라면, 가을은 여름과 겨울의 중간에서 그 둘을 단단히 이어준다. 여름의 노고가 없다면 가을의 풍요로움이 없듯이, 가을의 풍요로움이 없다면 겨울을 넘겨 다음의 봄으로 이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리(利)는 스스로 풍성함을 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올해와 내년을 단단히 비끄러매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리(利)는 단지 계절과 계절을 잇는 추상적인 순환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선배와 후배, 앞시대와 뒷시대를 이어서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이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리(利)의 부수가 ‘칼[刀]’인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자에는 근본적으로 날카롭다는 뜻이 들어있다. 지금도 두뇌와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켜 예리(銳利)하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린’의 이름에는 이 총명함에 대한 기대가 들어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일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는 해도, 분명 이 아이의 부모가 모두 보통사람보다 총명하니 자식 또한 그러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내가 가르쳐본 바로는 그 아버지의 학구열과 호학심이 특별나고, 어머니 또한 이 아이의 언니 다린이를 교육하는 데 이미 남다른 열정과 성과를 보였으니, 이 아이가 펼쳐 보일 재능이 ‘리(利)’ 자를 담기에 부족함이 없을 줄 믿는다.
이런 뜻에서 나는 이 아이의 이름을 감히 ‘이린(利隣)’이라고 했다. 이 이름을 줌으로써 ‘이로움’과 ‘이어줌’, 그리고 ‘총명함’을 기원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셋은 결코 따로따로가 아니라 모두 한가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나머지 둘을 이룰 수 없으며, 어느 하나라도 잘 하려면 나머지 둘이 받쳐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린이의 총명함이 발휘되어 그 주위가 넉넉해지고, 그리하여 그 다음 세대 다음 세상이 훨씬 더 멋진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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