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다린이 이름

다린이아빠 2009. 8. 19. 15:46

 

우리 큰 딸 김다린

20원 달라는 저 몸짓

다린이의 이름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지 지금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웃’이라는 게 있다. 이 말이 일견 친척이나 친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듯하지만, 실상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바로 이웃이다. 제 아무리 가까운 촌수더라도, 심지어는 부모자식 사이에도 자주 보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요즈음의 삶이고 보면, 이웃은 확실히 우리의 동반자이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설 때 만나는 사람들과 일과 내내 학교나 직장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웃인 것이다. 이웃을 뜻하는 한자 ‘隣’을 뜯어보면 그 속뜻이 잘 나타나 있다. 한 동리(⻏, 곧 邑)에 살면서 쌀(米)을 가지고 서로 왔다갔다(舛) 한다는 뜻이겠다. 쌀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양식이니, 소중한 무언가를 함께 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일러 이웃이라고 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이웃은 물리적인 거리로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물리적 거리마저 가깝다면 참 좋겠지만, 혹시라도 거리가 멀어서 자주 만날 수 없는 사람이더라도 함께 할 만한 소중한 것이 있다면 모두 이웃이다. 동업자도 좋고 동호인도 좋고 동지도 좋다.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의 그 벗이 바로 이웃일 터이요, 마음 상할 일이 있어 축 쳐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반가운 미소로 눈인사해주는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이웃일 터이요, 세계의 오지를 탐방하겠다고 맨몸으로 나서는데 순순히 따라나서는 학교 후배가 이웃일 터이다. 도무지 이 이웃의 범위에는 한정이 없다. 마음이 한데로 모아지는 그 신비의 고리만 있다면 세상 누구도 다 이웃이 된다.

 

그러나 뜻을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그만큼 피곤해지는 것이 또한 우리네 삶이 아닌가 한다. “이웃을 사랑할지언정 이웃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프랑스 격언은 또 그래서 힘을 받는다. 친척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여서 피할 수 없는 공동체이며, 친구는 같은 연배의 동일한 지향을 지닌 사람이다 보니 무엇이든 함께 해야만 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다. 친척이나 친구 간에 뜻을 어기고 심하게 다투는 일이 많은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웃은 서로 무관심한 듯 지켜보다가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가장 빨리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우리의 우군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히 함께 하며 적당히 우리를 에워싸는 보호막이 바로 이웃인 것이다. 거기에는 강요나 의무, 억지나 금제가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내 아끼는 제자 김의혁 군이 여식을 얻어 이름 짓기를 청해왔다. 이름은 한 사람이 평생 쓰는 것이라 나 같은 속사(俗士)가 함부로 나설 수는 없지만, 김 군과 나의 정리를 생각하여 차마 사양하지 못하고 이름을 지으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바로 그 이웃이었다. 공자의 명언,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가 떠올랐고, 나는 이웃이 많으라는 뜻에서 ‘다린(多隣)’이라고 지었다. 덕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이웃이 있다 함은, 역으로 이웃이 많으려면 덕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아이의 장래에 이웃이 많기를 바람은 또한 이 아이에게 후덕함이 깃들기를 소망하는 뜻이기도 하다. 덕이 있으면 이웃이 많고 그로 인해 또 복될 것이니, ‘다린’만으로 후덕과 만복까지 함께 빌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뜻만 좋다고 될 것이 아니라 불러서 듣기 좋고 또 남들과 구별되어야만 한다. 다행히도 이 이름은 아직 쓰는 이가 없는 듯하니 확실히 구별하기 쉽고, 소리 역시 매우 좋다. ‘린’에 들어간 유성자음 /ㄹ/와 /ㄴ/으로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을 살리면서, ‘다’에 들어간 무성자음 /ㄷ/로써 무게를 실릴 수 있을 것이고, 두 글자에 들어간 모음 /ㅣ/와 /ㅏ/가 잘 어우러져 진중함과 경쾌함의 조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 이름의 통념을 깨고 무게와 진중함을 이렇게 강조하는 뜻은 이 아이가 성차별을 벽을 넘어 제몫을 해내기를 염원하는 까닭이다. 더욱이 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활동할 시기는 지구촌 시대인 만큼 세계인이 부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한다. 마침 ‘다린’은 영어 darling과도 유사한 음이어서 부르기 어렵지 않음이 다행스럽다. 또, darling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고 보면, 이야말로 주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웃이 많은 The Darling of Hearts(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멋진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다린의 부모와 그 이웃들은 다린이가 그 이름을 지은 뜻대로 자라나도록 잘 보살피고 다린이 역시 커나가면서 제 이름값을 해내 줄 것을 소망하며, 그의 앞에 펼쳐질 멋진 신세계를 눈앞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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