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산부인과 의사들 ‘죽음의 행렬’…정책적 타살은 아닌가? 라포르시안 뉴스에서 퍼옴

다린이아빠 2012. 3. 9. 11:00

산부인과 의사들 ‘죽음의 행렬’…정책적 타살은 아닌가

경영난 비관 등으로 잇단 자살…분만 의료환경은 갈수록 악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오히려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저출산과 저수가, 그리고 잦은 의료분쟁 등 갈수록 열악해지는 산부인과 의료 환경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돌연사는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죽음의 행렬’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산부인과 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분만 중 의료사고를 겪은 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다가 돌연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2일 전남 광주시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에서는 50대 초반의 산부인과 의사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의사는 십 수 년 전 전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다 고향으로 내려가 산부인과를 개원, 10년 가까이 운영해왔다. 그러나 환자가 줄면서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결국 폐업을 했다고 한다.

병원이 폐업한 이후 여기저기 지역 종합병원을 돌며 봉직의로 근무하다 얼마 전엔 요양병원에 야간 당직의로 취직했다.

그러다 자신이 돌보던 노인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자 그 충격으로 급기야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해오던 40대 후반의 여의사가 자신의 병원 숙소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족과 경찰 등에 따르면 그의 사인(死因)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사였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그 원장은 구리 지역에서 10여 년 전 산부인과의원을 개원해 최근까지 분만시설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분만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으면서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다가 결국 그 스트레스로 인해 돌연 심장사를 한 것으로 유족과 경찰은 추측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미 수년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8년에는 강원도 원주시의 한 산부인과 원장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자택에서 약물을 복용해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보다 한 해 전인 2007년에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40년간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던 70대 원장이 경영난을 비관해 병원건물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살 사건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타 진료과에 비해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 악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산부인과의 분만이 줄고, 게다가 초기 개원시 분만시설을 갖추는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다보니 개원 과정에서 대출 등 엄청난 채무를 떠안고 시작하는 경우가 흔하다.



분만시설을 갖추더라도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분만수가 탓에 늘 적자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OECD 국가의 산과진료 서비스제도 및 보험수가 비교 연구’에 따르면 외국의 분만수가는 프랑스 373만원, 독일 382만원, 영국 222만원, 일본 종합병원 625만원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분만 수가는 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요양기관 종별 분만수가는 ▲상급종합병원 자연분만 103만원, 제왕절개 138만원 ▲종합병원 자연분만 87만원, 제왕절개 135만원 ▲병원 자연분만 77만원, 제왕절개 114만원 ▲의원 자연분만 69만원, 제왕절개 99만원등이다.
 
급기야 보건복지부가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분만수가를 50%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산부인과의 분만 포기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경영도 경영이지만 진료과의 특성상 분만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보니 산부인과 의사들은 늘 아슬아슬한 심정이다.

만에 하나 분만사고라도 발생하면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유가족들의 항의와 자책감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분만을 아예 포기하고, 미용이나 부인과 쪽으로만 진료를 보는 산부인과도 적지 않다.

심평원에 따르면 분만실을 보유한 산부인과는 2007년 1,015개에서 2011년에는 911개로 줄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체 산부인과 2,047곳 가운데 분만시설을 갖춘 병원의 비율은 44.5%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통계가 산부인과가 처한 어려움을 반증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을 놓고 산부인과 병원계가 발칵 뒤집혔다.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에 무과실 분만사고에 따른 보상금 재원 부담을 정부와 해당 병원 및 의사가 반반씩 부담토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분만병원협의회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원래의 목적과 달리 오히려 의료분쟁을 조장하고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제하고 있다"며 "무과실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가까운 일본은 의사에게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가 책임진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되면 분쟁 조정신청 건수가 더욱 늘어나고 산부인과의 분만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불가항력적 무과실 보상제도는 법령에 적혀진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사고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인간으로서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이다”며 “그런데 무과실 분만사고에 보상재원 50% 부담지우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을 할 때마다 분만이라는 죄를 짓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수가와 저출산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분만이라는 성스러운 직업을 택한 것이 죄라면 이 땅에서 그 누가 분만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며 “산부인과 의사들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한명의 국민이며 똑같이 보호받고 모든 법 앞에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그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
 * 라포르시안 뉴스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