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Ted Williams (테드 윌리엄스)

다린이아빠 2013. 5. 29. 20:00

제가 좋아하는 메이저리거인 테드 윌리엄스와 조 디마지오

 

라이벌 열전을 적어 보려 합니다.

 

조 디마지오 vs. 테드 윌리엄스

 

나이는 조 디마지오가 많지만 제가 더 좋아하는 테드 윌리암스부터 시작합니다.

( 글 쓰는 와중에 우리 핸진이가 완봉승을 했네요 추카 합니다 )

 

 

download.jpg

 

테드 윌리엄스 (1918-2002)는 곧잘 동시대 선수인 조 디마지오와 비교된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만큼이나 뉴욕 양키스 대 보스턴 레드삭스의 라이벌 매치도 유명하다 (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엘쥐와 넥센 경기가 있다 ) 테드 윌리암스와 조 디마지오는 그 중심에 있었다.

 

양키스는 보스턴으로부터 베이브 루스 영입 이후 계속 잘 나가고 있었고 보스턴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막 뻗어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무튼 팬들은 우승을 많이 하고 또 겸손하고 조용한 조 디마지오를 사랑했을는지 모르나 야구 실력은 테드 윌리엄스가 분명 한 단계 위였다.

 

 

시작

 

윌리암스의 목표는 사람들이 저기 테드 윌리암스가 지나간다. 저 사람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타자다 (There goes Ted Williams, the greatest hitter who ever lived.)’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목표를 위해 정말 무던히도 노력을 한다.

 

그는 타격의 과학 ( Science of hitting ) 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타격의 이론적 완성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 참고로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자신의 방에 야구 선수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의 책 표지를 붙여놓았다고 한다. 책 표지에는 윌리엄스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서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책에서 강조한 ‘타자의 선구안과 기다림의 미학’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투자와 야구, 크게 관련 없어 보이지만 워렌 버핏은 윌리엄스의 타격 논리를 자신의 투자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는 워렌 버핏이 세계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증명되었다)

 

윌리엄스는 1939년 메이저 리그에 데뷰를 한다. 첫 해부터 그는 .327 의 타율에 31 홈런 그리고 150 타점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데뷰한다. 비록 Rookey of the year 는 그 후에 생기지만 베이브 루스는 신인상이 있다면 그에게 주어야 된다고 말을 한다. ( 참고로 디마지오는 데뷰 시절 .325 29 홈런 125 타점 ) MVP 는 디마지오였지만 우리의 윌리엄스 역시 MVP 후보로 데뷰년도에 무려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그는 40 .344 로 약간 타율은 오르지만 23개의 홈런과 113 타점으로 비교적 양호한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고 1941년을 맞이한다.

 

그의 메이저 리그의 세번째 해인 1941년은 메이저 리그에서 특별한 해였다.

 

지금도 깨지기 가장 어렵다는 56게임 연속 안타 기록을 조 디마지오가 세웠으며 마지막 4할 타율을 윌리암스가 작성했다. (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깨지기 가장 어려운 기록은 장명부의 한 시즌 427 1/3이닝 던지기라고 생각함 )

 

올스타 블레이크 때 까지 그는 .406의 타율과 62타점 그리고 16 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는 올스타 전에서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가 자존심을 걸고 거의 피 터지게 경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는 5-4로 뒤지고 있던 9회 쓰리런 홈런을 날림으로서 아메리칸 리그의 극적인 승리를 가져온다 ( 9회 무사 만루 찬스에서 윌리암스 앞의 조 디마지오가 더블 플레이를 당해 질 뻔 한 경기를 윌리엄스의 홈런으로 이긴 것이다 ). 이 경기는 그에게 큰 힘을 주었다.

 

8월 말에도 .402를 기록하고 있었는 데 양키스 팬들도  거의 20년 만의 4할 타율을 기대 할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그런 기대가 좀 부담이 되었는 지 9월 중순 .413 이었던 타율이 정규 리그 경기 마지막 데블헤더를 앞둔 9 28일 경기 전에 .39955 로 약간 떨어졌는 데 당시 감독인 조 크로닌은 이대로 가면 반올림으로 4할 타율이 될 수 있으며 4할 타율을 위해 경기에 출전 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윌리암스는 마지막 필라델피아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나서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경기에서 벤치를 지키고 있는 다면 진정한 4할 타자의 자격이 없다고 감독에게 설명하며 경기에 나섰다. ( 이 부분 정말 멋있지 않나? 얼마 전 김재박 감독의 배려로 계속 걸어나간 홍성흔과 김영덕 감독의 배려로 8번 연속 걸어나간 홍문종이 기억난다. 박용택과 이만수도 그러지 말라고 그러면서 경기에 나갔으면 어땠을까?  반면 93년도 이강돈은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한대화에게 수위 타자를 놓쳤지만)

 

 결국 마지막 더블헤더 경기에서 8타수 6안타를 기록함으로서 .406 로 시즌을 마췄고 자존심도 지켜내었다 ( 요즈음은 희생 플라이는 타수에서 빠지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윌리암스의 1941년 타율을 요즘의 기준으로 하면 .416 이라고 한다 )

 

결국 윌리엄스는 1941.406의 타율과 37 홈런 그리고 120 타점을 기록하였다. .406의 기록은 윌리암스가 6번 타격왕을 차지하는 데 시작이었고 1924년 이후로 가장 높은 메이저 리그 타율이었다. 출루율 .553 61년 간 기록으로 유지되다가 2002년 약물 쟁이 베리본즈에 의해 깨진다.( 본즈는 2002 .582 그리고 2004년에 처음으로 .609 6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한다 )

 

그러나 MVP 56게임 연속 안타와 더 많은 타점을 올린 조 디마지오에게 돌아간다.(.357, 25 홈런 125타점 )

 

그리고 그 해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었다.

 

1942년 윌리엄스는 타율 .356 36 홈런, 137 타점으로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다. 그러나 .322 / 18 홈런 / 103 타점을 기록한 뉴욕 양키스의 조 고든에 밀려 MVP를 또 놓친다. 그 전년도는 그렇다고 해도 이해의 MVP 선정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42년도에는 양키스가 우승도 못했는 데 정말 이해가 안 가는 )

 

 

파이럿으로의 윌리엄스

 

 

 images.jpg

--> 졸라 멋지다 

 

42년 시즌 중반 해군에 입영신청을 함으로써,(Williams served as a United States Marine Corps pilot during World War II and the Korean War) 2차 세계대전에 참전. 3년간의 공백을 가지게 된다. 원래는 징집 대상자가 아니였으나 본인의 의지로 참전하여 비행 교관을 하게 된다. 디마지오를 비롯한 대부분의 메이저 리거들은 위문 공연 등을 하며 전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윌리암스는 예외였다.

 

결국 24-26세 전성기 시절의 시즌을 송두리째 날린  윌리엄스는 1946년이 되어서야 다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공백기를 무색하게 하는 타율 .342 38홈런, 123타점으로 군복무한 기간동안 5할이하의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으며, 정규시즌 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애타게 기다려왔던 정규리그 MVP를 차지하긴 했지만, 시즌 후반기에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자신의 야구 인생 중 유일했던  월드시리즈 ( vs. 카디날스)에서 1타점에 그치며 시즌을 복귀 후 첫 시즌을 아쉽게 마감해야만 했다.

 

1946년 클리블랜드의 신예감독 루 부드로가 "Williams Shift(윌리엄스 쉬프트)"를 고안할 정도로 당겨치는 타격을 계속적으로 했음에도 그는 웬만한 슬럼프 없이 매 시즌을 완벽히 소화하며 1947년 타율 .343, 32홈런, 114타점으로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 MVP수상이 유력해 보였지만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디마지오에게 다시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343 /20 홈런 /97타점 ). 디마지오가 월드 시리즈 우승하고 보스턴이 리그 3위를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고는 하지만 기자들은 찬 바람 쌩쌩부는 윌리엄스 보다는 온화한 디마지오를 더 좋아하였다. (MVP 투표를 왜 기자들이 하냐? 무슨 인기 투표도 아니고)

 

46년 리그 우승이후 조 메카시와 같은 당시 최고의 명장을 영입하고도 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팀은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하였지만, 윌리엄스의 타격은 팀 성적과 달리 지칠 줄 몰랐고, 48년엔 .369 타율로 타격왕 2연패를 하였고 49년 생애 최다인 159타점과 43홈런과 타격 2위인 타율 .343 을 차지하며  두 번째 MVP를 차지하게 된다. ( 이 때 타격왕은 조지 켈이었는데 둘의 타율 차이는 0.002 였다. 이때도 마지막 경기에 나섰는데 그만 무안타로 그쳐서 타율이 그만 역전이 되고 말았다. 암튼 멋있다)

 

50년과 51년 부상으로 3 1푼대의 저조한 (?) 성적을 거두었던 윌리엄스는 1952 51일 한국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 받는다. 비록 지난 8년간 비행기 조종을 전혀 하지 않은 윌리엄스지만 그는 야구팀의 일원으로 편안하게 전쟁을 바라만 보는 일을 거부한다. 8 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그는 포항의 K-3 공군 기지에 배치된다. 1953 2 16, 윌리엄스는 평양의 탱크와 보병 훈련소 공습에 참여한다. 그러나 파편에 맞아서 비행기는 떨어지고 만다. 그는 굉장히 유명했기 때문에 근처 기지에 있는 많은 정비공들이 다투어서 그의 비행기를 고쳐 주기 위해 앞 다투어 모였고 윌리엄스는 며칠 동안이나 그 비행기에 머물게 된다. 그는 이 일로 나라에서 훈장( Air medal )을 받게 된다. ( 윌리엄스가 우리나라에서 죽을 뻔 하다니 )

 

윌리엄스는 한국 전쟁 동안 폐렴과 중이염에 걸려 비행이 불가능 해 질 때 까지 총 39회의 비행 전투에 참전하였다.

 

당시 비행 동료 였고 나중에 우주 비행사가 되는 John Glenn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그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파이럿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윌리엄스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존경했다고 전해지는데 맥아더도 윌리엄스의 40번째 생일 때  친히 그린 그림을 보내면서 ‘ To Williams – not only American’s greatest  baseball player, but a great American who served his country, Your friend, Douglas MacArthur. General  U.S. Army’ 라고 적어 보냈다고 한다. ( 존나 멋있는 넘 )

 

1950년 중반 다이빙 캐치를 하다가 왼쪽 팔꿈치를 부상, 7월에 뼛조각 제거수술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였지만, 10년 가까이 기록한 +3할타율은 한치의 변화도 없이 계속해서 유지하였다. 1952년과 53년 한국전 참전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하여 20대 초반에 이어 또 다시 공백을 가져야 했던 그는 30대중반의 나이로 다시 복귀, 계속해서 +3할의 타율을 기록하였으며 57년과 58년에는 각각 타율 .388, .322로 리그 타격왕 2연패를 한다.

 

195940세가 넘어 가면서  잦은 부상과 더딘 회복으로 2할대의 타율 (.254)을 처음으로 맛본 그에게 구단주는 은퇴를 종용했다.( 존나 잔인한 넘, 한번 3할 못했다고 꼭 옛날에 한 번 못했다고 최동원 쫓아낸 롯떼가 기억나는 군 ) 하지만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고 이듬해  41살의 나이가 된 1960 8 베이브 루스이후 처음으로 통산 2,000 볼넷을 얻어내었으며, 결국 .316의 타율로 기어코 3할을 넘기고 은퇴하였다.

 

은퇴 발표후 마지막 경기였던 9 26일 볼티모어와의 홈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장식, 은퇴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이라는 정말 극적인 선물을 하고 통산 521홈런을 기록하고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은퇴하였다.

 

(그는 메이저 리그 초창기에 홈런을 치고 모자를 벗어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했는 데 이것이 언론에 건방진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  후 홈런을 치면 그냥 묵묵히 관중석을 쳐다 보지 않고 모자를 벗지 않고 그냥 덕아웃으로 들어왔는 데 이날도 그냥 모자를 벗지 않고 들어왔다고 한다 )

 

(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윤동균 선수가 마지막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하였는 데 이것 보고도 나 기절 할 뻔 했는 데 홈런이라니)

 

야구라는 것이 상대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기록 자체를 직접 비교가 어렵다. 투수들의 전성 시대였던 60년대에는 3할을 겨우 넘은 선수가 타격왕을 차지하기도 했고 90년대 말과 2000년대 약물로 무장한 본즈나 맥콰이어 소사등의 괴력의 타자들이 나와서 엄청난 타격으로 그 동안 깨지지 않았던 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각종 기록을 갱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윌리암스의 기록을 루스나 본즈의 선수 시기와는 겹치지 않아 직접 비교가 어렵지만 또 하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인 행크 아론의 기록과 윌리엄스의 기록을 7년 정도를 비교할 수 있다 ( 1954 -1960 ). 그 때 윌리엄스의 나이는 전성기를 한참 지난 36-42세 인데 타율/ 출루율 /장타율 /홈런 .333/.470/.617/184 이고 20-26세 였던 아론은 .317/ .376/ .556/ 219 이다. 아론의 이 기록은 평생 기록 평균( career average)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론은 1957년에 유일한 MVP 를 받았다)

 

비록 부상으로 빠지는 경기가 많아서 홈런과 타점에서는 많이 손해를 보았지만 가장 기록이 떨어진다는 은퇴를 즈음에서도 윌리암스의 기록은 아론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결국 윌리엄스는 1939년부터 1960년 까지 약 19년간 ( 1943 - 1945년은 세계 제 2 차 대전 참전으로 제외 52 53년도 거의 못 뜀) 보스턴 레드삭스의 좌익수로 뛰며 통산 2654 안타 타율 .344, 홈런 521, 1839 타점 그리고 2012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베이브 루스 조차 1번도 기록하지 못한 트리플 크라운을 2번이나 석권하였으며 6 번의 타격왕을 차지하였다.

 

출루율은 .482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1 ( 2위 베이브 루스-이하 루스- .474) 장타율 .634 으로 역대 2 ( 1위 루스 .690 )이고 그의 역대 .344 타율은 메이저 리그 사상 7번 째 기록이지만 라이브 볼 시대인 1920년 이후에 데뷰한 선수 중에서는 최고 기록이다. 그는 또 19년 연속 올스타였으며 그는 은퇴 당시 볼넷의 기록도 루스 다음이었는 데 지금은 배리 본즈와 리키 핸더슨에 이어 4번째이다. 은퇴 후에는 열열한 낚시 광으로 낚시의 명예의 전당에 가입되었다 ( IGFA)

 

( 2005년부터 집계된 KBO의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출루율 1위는 대략 .450 정도에서 결정되며 작년까지 한 번도 .480을 넘은 선수는 없다. 그런데 평생 출루율이 48%가 넘는 것이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라고 일컬어지는 출루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는 리키 헨더슨 조차 40%를 간신히 넘었다. 타율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인 양준혁의 통산 타율이 .316 감안해 보자. 참고로 우리나라 통산 타율 1위는 장효조 선수 .331 )

 

거의 5시즌에 달한 비행사로서의 군 복무 공백이 없었다면 어쩌면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 갱신자는 행크 아론이 아니라 윌리엄스 일 가능성이 높다.

 

 

명예의 전당

 

1966년 은퇴한 지 5년 째에 자격이 주어지는 명예의 전당에 당연하게 윌리엄스는 93.4%의 높은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을 한다 (참고로 조 디마지오 88.8%).  헌액식에서 윌리암스는 명예의 전당에 사철 페이지나 조지 깁슨과 같은 니그로 리그에서 전설적인 성적을 거두웠던 선수들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기회를 주어야 된다고 주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흑인 선수들에게 굳게 닫혀있던 명예의 전당의 문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시초이다. ( 사실 이런 행위가 어떤 정책 보다도 인종 차별 정책에 도움이 된다. 재키 로빈슨 정도는 아니였지만  인종 차별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참고로 사철 페이지나 조지 깁슨은 재키 로빈슨 이전의 니그로 리그에서 활약하였던 전설적인 흑인 선수들로 깁슨은 메이저 리그에 입성하지 못하였고 뇌 종양으로 아깝게 입성 얼마 전 사망 -  페이지는 전성기가 한참 지나서야 메이저리그에서 짧게 활동하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당시 몹시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1971년 사철 페이지가 그리고 1972년 조지 깁슨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는 초석이 되었다. (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문 너무 멋있는 넘 )

 

 

결혼

 

조 디마지오는 평생 세기의 스타 마를린 먼로와 단 한번의 결혼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지만 -실제 결혼은 2번 , 아무튼 먼로와의 헤어짐 이 후 디마지오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았다 - 잘 생긴 우리의 윌리엄스는   3번의 이혼과 4 번의 결혼을 한다. ( 인물도 윌리엄스가 낳다 )

 

220px-Ted_Williams_1940_Play_Ball.jpeg 

--> Handsome guy

 

 

언론사와의 관계와 봉사 활동

 

윌리엄스는 언론사 기자들과 보스턴 팬 모두 친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야구 자체 보다도 윌리엄스의 개인사에 관심이 더 많다고 그는 생각했다. 윌리엄스도 상 보다는 야구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듯

 

그러나 그는 그가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관대하고 친절했다. 그는 어린이 암 치료로 유명한 Jimmy Fund of the Dana-Farber Cancer Institute ( ㅆㅂ 해석은 알아서 )를 후원했는 데 1948년 부터 2010년 까지  무려 7억 달러 이상의 돈을 모았다.

 

그는 수도 없이 암으로 치료 받는 어린이들을 방문하였으며 언론에는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존나 멋있는 넘 ) 가끔 치료 받는 어린이의 부모들은 병원비를 계산 할 때 윌리엄스가 계산한 것을 알게 되곤 하였다 ( 술 값 처럼 ) 최근 그 펀드에서 “Williams would travel everywhere and anywhere, no strings or paychecks attached, to support the cause ... His name is synonymous with our battle against all forms of cancer라고 말했다.

 

1991년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테드 윌리엄스 데이에서 윌리엄스는 나는 팬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답례를 했다. 그는 마지막에 팬들과도 화해를 했다.

 

 

은퇴

 

윌리엄스는 낚시를 잘 했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2000년에 International Game Fish Association 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도 한다.

( ㅆㅂ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에서 이렇게 멋있는 낚시꾼을 자기 소설에 넣어야지 조 디마지오를 소설에 넣냐? )

 

 230px-Ted_Williams_1998.jpg

 

늙어서도 인물 좋다

 

죽음

 

말년에 그는 심근병증 ( cardiomyopathy )을 앓았다. 그는 pacemaker ( 심박동을 조절하는 기계 ) 2000년에 심장에 이식했으며 2001년 심장 개복 수술도 받았다. 중풍을 앓기도 한 그는 결국 2002 7 5일 플로리다에서 심정지로 생을 마감한다.( 심정지로 생을 마감함 숨을 안 쉬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  그의 나이 83세였다.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은 냉동 보관되었다. 당초 화장한 뒤 유골을 플로리다 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그였지만, 이후 아들과 다시 작성한 유언장은 자신의 시신을 냉동 보관해달라는 것으로 재작성되었다. 딸인 바비 조 윌리엄스 패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알코 라이프 익스텐션 파운데이션'로 옮겨져 냉동보관되었다.  ( 냉동 보존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이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닌 듯 하고 사실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

 

 

여담

 

MVP와 뉴욕 양키즈

 

위대한 기록을 남긴 윌리엄스가 뺏겼다고 생각 되는 4번의 MVP

우연인지 모두 양키즈 선수들에게 뺏겼다. 참고 하시라고

 

1941

 

 테드 윌리엄스 : .406/.553/.735/1.287 홈런 37 타점 120

조 디마지오 : .357/.440/.643/1.083 홈런 30 타점 125

 

è  이때는 56 게임 연속 안타 때문이라고 치자

 

1942

 

테드 윌리엄스 : .356/.499/.648/1.147 홈런 36 타점 137
조 고든 : .322/.409/.491/.900 홈런 13 타점 103

; 이건 또 뭐냐? 심지어는 트리플 크라운인데도

 

1947

 

테드 윌리엄스 : .343/.499/.634/1.133 홈런 32 타점 114
조 디마지오 : .315/.391/.522/.913 홈런 20 타점 97

 

38세 은퇴 즈음하여

 

테드 윌리엄스 : .388/.526/.731/1.257 홈런 38 타점 87
미키 맨틀 : .365/.512/.665/1.177 홈런 34 타점 94

 

* 자원해서 전쟁 중 군대 갔다오고 ( 심지어는 죽을 뻔 ) 안 드러나게 봉사 활동 하고 자신에게 당당하고 낚시도 잘 해

심지어는 야구도 잘 해

 

정말 멋있는 사나이 중에 싸나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