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휴대폰 이야기

다린이아빠 2017. 12. 5. 18:43

지난 주 일요일 우리 딸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휴대폰을 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 정확히는 스마트폰- 없는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매일 같이 이야기 했고

 

하도 읊어대서 기억력 나쁜 나도 같은 반에 스마트폰이 있는 딸의 친구 이름들을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영어 공부를 하는 데 모른는 단어가 나올 때 사전 검색을 하려면 꼭 스맛폰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스맛폰만 있으면 영어 성적이 훨씬 더 오를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카톡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해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데 역시 스맛폰이 없어서


자기가 왕따가 될 것 같다는 우려도 강조하였다.

 

스마트 폰의 폐해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나 - 스맛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생각하면- 는


조금이라도 사주는 시기를 늦출려고 하였으나 스마트 폰 구입 조건으로 내 세웠던 수학 학습지인  '센 수학' 도 다 풀었고 하필(?)이면 애 생일도 겹쳐 어쩔 수가 없었다.

 

사기로 약속한 2일 전 금요일 부터 아이의 마음은 붕 떠 있었다.

 

휴대폰 사러 가는 길에 평소에 하지 않던 팔짱도 껴 주고 손도 잡아 주었다.

 

뽀뽀도 해달라면 해 줄거 같은 근래 보기 드문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평소 아이폰을 동경하던 내 딸은 

 

'아이폰을 가지고 있어야 애들이 멋있게 봐'

 

라며 아이폰을 원하였다.

 


물론 스맛폰이 필요해서기도 하지만 과시용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최근 아이폰6가 청소년 요금으로 나와서 아이폰으로 사기로 했다.

( 폰 가격 자체도 엄청 쌌다 )

 

 

아이폰이 딸 손에 쥐어주는  순간 최근 1년 동안 나는 그렇게 밝은 우리 딸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

 


사실 엄청 이쁜 얼굴인 우리 딸은  즈 또래 나이 애들이 흔히 그렇듯이 항상 학교 성적 걱정 친구 걱정에 찌들어 있었다.

 

 

 

첫 통화는 당연히 내가 했다. 

 

 

 

갑자기 20년 전 첫 여자 친구의 얼굴이 떠 올랐다.

 

그 때는 IMF 직후 였고 나는 시골 보건소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보건지소에 있었다.

 

보건소는 비록 시골이지만 버스도 다니고 택시도 있고 결정적으로 011,017은 물론 016,018,019 까지

모두 다 잘 터졌다.

 

그러나 더 오지 시골인 보건지소에서는 오직 011 만 터졌다.

 

당시 친구가 삼성전자에 다녔는 데 그 친구 덕분에 삼성 에니콜 휴대폰과 SK telecom 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첫 핸드펀 번호는 정말 자랑스러운 스피드 011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011 에 검정색 삼성 브랜드의 휴대폰이었다.

 

한편 당시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 친구도 주위 친구들이 막 휴대폰을 사기 시작한 거 같았고 


본인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휴대폰 사기를 몹시 원했고 나는 서울에 올라가면 사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마침내 서울로 올라가는 날 그 날이 되어서 우리는 휴대폰을 사러갔다.

 

여자 친구의 얼굴이 그렇게 밝은 것은 참 오랬만이었으며 평소 잡지 않던 손도 잡아주고


팔짱도 껴줬다. 뽀뽀도 해 달라면 해 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당시 PCS  판매가 막 시작되었는 데 PCS 는 통신료도 저렴하고 폰도 더 이쁘고 더 작고 더 쌌다.

 

하지만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나는 016 , 018, 019 같은 PCS 를 사면 여자친구와의 연락이 어려웠다.

 

괜히  폰을 사주고 정작 당사자인 내가 그녀와 통화를 못하게 되는 불상사는 있어선  안 될 말이었다 .

 

반드시 꼭 어디서나 잘 터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비싼 요금의 011 을 사야만 했다. 

 

 

문제는 폰이었는 데 ( 삼성 애니콜을 은연 중에 원하는 ) 여자친구를 설득하여

 

'야 어차피 퀄컴 기술이야, 삼성이나 현대나 엘지 다 똑같아.'

 

 

그러면서  제일 싼 현대 상표의 폰을 슬며시 골랐다.

 

 

' 여자는 꼭 작은 휴대폰이 필요없어. 항상 가방 가지고 다니잖아. 거기에 넣어 다니면 되고


물론 내가 전화할 때 못 들을 수도 있으니까 벨 소리는 커야겠지 '

 

시티맨큐.jpg

 

 --> 대략 이런 느낌 그 이름하여 시티맨 큐.. 벽돌 크기이고 단단해서

      유사시 호신용으로 쓸 수도 있었다.

 

 

단축 번호 1번을 내 번호로 저장하고 내가 제일 처음 전화를 하였다.

 

정말 우렁차게 소리가 울렸고 당시만 해도 말도 없고 엄청난 새침때기였던 여자친구는 정말 좋아하는 거 같았다.

 

삐삐에서 첫 휴대폰을 가지게 된 여자친구는 정말 행복해 했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 거 같았다.

 

 

퀄컴의 앞선 기술 덕분에 ( 좀 무겁기는 했어도 ) 한 번도 전화가 안 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우리는 그 전화기로 3년 정도 통화를 했었다.

 

 

 

 

오늘 이렇게 기뻐하는 딸의 얼굴을 보니 20년 전 그렇게 밝았던 그리고 고왔었던 우리 딸의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주저리 주저리 읊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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