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영어를 왜 배우는가?

다린이아빠 2013. 2. 24. 23:16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왜 배울까?

 

 

 

영어가 뭐길래 이렇게도 난리 부루스일까?

 

 

오늘 우리 딸들이 폴리라는 영어 학원에 가서 시험을 보고 왔다.

 

 

 

레벨 테스트라고 하던데 그 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지 알아보는 시험이란다. 물론 테스트 비도 친절하게 따로 별도로 받고 그리고 그 곳에 들어가게 되면 영어를 잘 하는 학생이라는 네임 밸류를 얻어 그 학생도 또 그 엄마도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 할 수 있는 모양이다.

 

 

 

폴리라는 학원 말고도 우리 동네에는 그렇게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영어 학원이 많은 모양이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학원이란 못 하는 애들 잘 하도록 실력을 키우게 하는 그런 노하우를 가진 곳이 아닌가? 잘하는 애들 뽑아서 교육 시키는 거 누가 못하나?

 

 

원래 내가 학생 때도 영어가 대학을 들어가는 데 중요한 팩터였지만 이렇게 초등학교 때 부터는 아니였다. 거의 광풍이다.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도 영어 공부의 광풍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토플과 토익 등 영어 인증시험을 위해서 지불하는 직접 비용만도 연간 350억 이상이며 한 해 영어 교육에 9-10조원의 비용이 든다 한다. 조금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2004년도 한 해 전 세계적으로 450만 명이 토익에 응시했는 데 이중 183만명이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 미국은 그냥 앉아서 돈을 버는 거다 )

 

 

 

뿐만 아니라 이제 대학교 때 영어를 위해서 외국 연수를 가는 것은 있는 집에서는 거의 필수이며 덕분에 4년 만에 졸업하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직장인이나 혹은 대학 교수들은 본인의 연수 기회를 본인 보다 자녀 영어 교육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전국민이 영어를 배우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이리 못하나?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영어를 못 해도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아니 달리 말하면 영어를 배워도 일생 동안 써먹을 일이 없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엑셀과 파워 포인트가 필요할 것 같아서 on-line, off-line 강의를 열심히 들은 적이 있다.

 

 

들을 때는 뭔가 뿌듯하고 배운 거 같았는 데 1 달 넘으니 다 잊어버리고 사용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논문을 쓰기 위한 데이터 정리 시 또 학회에 나가서 발표하느라 사용한 엑셀과 파워포인트 덕분에 엑셀과 파워포인트에 관한 내 실력은 정말 괄목상대하게 늘었다.

 

 

 

일본 가수를 좋아해서 일본 잡지를 보고 일본 인터넷을 보다가 일어가 늘은 학생, 좀 야하게 나가면 일본 포르노를 좋아하다가 야한 그림 밑의 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유창하게 된 사람, 미국 프로야구가 너무 좋아 선수들 검색하고 메이저리그 방송 보다가 영어가 능숙해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 흔히 볼 수 있다.

 

 

급한 필요가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마치 가장 긴급한 상황인 전쟁 때 과학의 발전 속도가 평상 시 보다 훨씬 빠른 이유이다. 

 

 

필요가 없고 쓸 데가 없으니 곧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필요하다면 영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문제의 핵심으로 돌아가서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 영어를 못해도 불편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좁은 땅덩어리에 대다수가 비슷한 민족으로 중앙 집권적 제도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언어가 서로 잘 통한다. 인도나 방글라데시 혹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처럼 부족간에 혹은 지역간에 말이 달라 공용어가 굳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영어를 강조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만큼이나 사회 지배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영어가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가정이 맞다면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잘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만들 수도 없다는 근원적 문제는 쉬 가려지게 되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려면 모든 국민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은 헛소리인 것이다.

 

 

 

가끔 국내에서 개최되는 외국 학회에 외국인이 참여하는 심포지엄에 가보면 분명 대다수의 청중이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당연히 우리말로 먼저 질문을 하고 난 다음 자신이 영어로 옮기거나 통역을 부탁해야 하는 데 더듬거리며 영어로 질문하고 그리고 영어로 대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이러면 실제로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뜻의 70%도 전달이 안된다 ).

 

 

게다가 우습게도 우리 사회는 영어를 배울 때는 이렇게 과감해야 한다고 은근히 가르친다.

 

 

글쓰기의 중요성

 

 

 

여기서 우리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정말 영어가 필요한 부분인 영어로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영어를 듣지 못하고, 말할 줄 모르고, 단지 읽을 줄만 아는 사람은 제대로 영어를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2년 전 고등학교 때 친구를 20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는 지금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의 연구원으로 있고 이제 미국에 간 지도 거의 10년이 넘어갔다고 했다. 그 친구와 얘기 하던 중 영어 공부의 가장 중요한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 왈 ( 一言以蔽之曰 )

 

 

 

‘ writing’

 

 

이라는 말을 했다. 조금은 의외였는 데 나랑 생각이 너무 일치 해서 ㅋㅋ 놀랄 만한 일은 그 다음 그 녀석이 한 말이었다.

 

 

; 그럼 writing 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뭐지?

 

 

그 녀석 ; 우리말 글쓰기

 

 

이 역시 머리 좋은 녀석 나와 일치하는군.

 

 

연구소에서 매일 매일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이게 제일 힘들고 중요하다고 했다.

 

 

하긴 5 살 짜리가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발음이 좋아도 의대 논문을 읽거나 쓰거나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국어를 영어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의미에서 현재 중고등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영어의 독해력을 터득해서 상급 학교에 입학하고 그 실력을 이용해서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학업을 마친 후에도 직업적인 필요에 의해 영어로 된 문서, 문헌, 도서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이런 일련의 교육들은 이해가 될 수가 있다.

 

(나 같은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

 

 

 

 이들에게는 회화 능력보다는 정확한 영문 독해력이 소중하고 그 악명 높은 문법 번역 독해법이 차라리 더 유용할 수도 있다.

 

 

 

문자 그대로 교양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수준 높은 영문을 읽거나 영어로 논문을 써서 서양 문화와 문명의 정수를 익히거나 외국에 발표하는 도구과목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쌓아야 할 영어실력은 ‘you know’ ‘I mean’ 으로 인터뷰의 절반을 채운다는 영국의 어느 유명 권투선수의 유창한영어 구사력이 아니라 바로 그 어휘력과 적절한 표현으로 조직해 내는 사고력 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러한 사고력은 소위 원어민이라고 해서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분 상승의 도구로서의 영어

 

 

 

지금도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초등학교 중학생에게 영어를 왜 공부하냐고 물어보면 거의 다

 

 

 

성적 잘 받아서 좋은 대학가서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 미국 친구를 사귀려고 여행을 잘 하기 위해 영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뭐 이런 대답은 잘 안 나오지 )

 

 

 

이런 역사는 오래 되었다고 한다.

 

 

 

구한말 교육 선교사로 일했던 아펜젤러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한결같이 벼슬을 하기 위하여’ ( to get rank ) 였다고 한다. 이종배는 구한말 영어를 배우던 학생들의 세태를 다음처럼 꼬집고 있다.

 

 

 

학생들 대부분이 너무 공리적이어서 취업이나 출세만을 바라고 그 짧은 수학연한이나마 끝내 학업에 정진하지 않았고 더구나 육영공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태만 그 자체였다.’

 

 

 

아프리카인들이나 인도인들이 영어를 못해서 주변인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기득권층의 능숙한 영어 실력 때문에 오히려 제 1 세계인들에 의해 보다 손쉬운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말이 안 통해야 지배가 어렵고 협상도 쉽지 않다 )

 

 

 

 

마지막으로 조기 영어 교육에 대해 내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병원에서 원어민 영어 선생이 개입된 성폭력 관련 사건을 많이 본 경험으로 이런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떻게 될 다 걱정이 앞선다. 선생이란 단순히 말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라나라 교육 체계에서 일정한 과정과 시험을 통해 선발된 선생님들과는 달리 언어가 통하지 않고 어떤 사람인지 알기가 어렵고 실제로 언론에서는 원어민 선생님들의 각종 사건 사고를 많이 접하니 결국 부모들은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학원 밖에서는 조심하라고 계속 주의를 준다.

 

 

 

쾌쾌하게 조선시대를 들먹여 군사부 일체 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초등 혹은 취학적 아동에게 존경해야 할 선생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 이렇게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이게 사는 건가?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본래 대화란 하고 싶은 말과 공통된 주제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는 한국말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만한 대상이 아닌 사람과는 영어로 해도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없고, 흥미롭지 않은 영어대화를 통해 쌓을 수 있는 영어 실력은 별로 없다.( 뭐 예외가 있다면 예쁜 아가씨와의 대화는 예외가 될 수는 있겠지 )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외국인에게 길안내나 자기소개가 전부가 아닌 바에야 영어권 출신원어민이라고 아무에게나 영어를 배울 수는 없는 일이다.

 

 

 

                    

                                                       --> 글의 많은 부분이 영어 내 마음에 식민주의 에서 참고하였슴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