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우려섞인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오는 2016년을 기점으로 그동안 증가해 온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2030년에는 전체인구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려 국가 존폐 위기까지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출산장려 정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의료시스템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 환경 때문에 고령산모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위험 임신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데 따른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감소와 모성사망비 증가이러한 신호는 이미 모성사망비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10만명의 신상아 당 임신관련 질환으로 산모가 사망하는 '모성사망비'는 2008년 8.4명에서 2011년 17.2명으로 2배 이상 늘었고, 특히 간접 모성사망비는 0.9명에서 5.3명으로 6배 가까이 급증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35세 이상, 즉 고령산모의 모성사망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5~39세 모성사망은 30.1명, 40세 이상은 79.7명으로 25~29세(10.0명), 30~34세(12.4명)보다 2.4~8배 가량 높다.
게다가 이러한 고령산모의 비율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7.4%에 불과했던 고령산모 비율은 2002년 8.0%, 2004년 9.5%, 2005년 10.6%로 증가해 2011년에는 18.0%로 최근 10년 새 10%p 이상 높아졌다.
최근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제일병원이 지난해 출산한 산모 6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과적 합병증 분석 자료를 보면 이런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제일병원에 따르면 2001년 13.7%였던 고령산모는 2002년 11.8%로 다소 감소하다 2004년 14.2%, 2006년 19.3%, 2007년 23.0%, 2010년 33.3%, 2011년 33.6%로 급증했다.
40세 이상 초고령산모의 빈도도 2007년 8.7%에서 2008년 10.1%, 2010년 11.6%, 2011년 13.5%로 증가했다.
게다가 고령산모의 경우 임신중 고혈압성 질환, 임신성당뇨, 제왕절개 빈도, 조산빈도 등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학회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분만의사 감소 등 산부인과 인력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고위험 산모를 케어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분만의사가 감소해 고위험 임신관리 능력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모성사망비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분만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앞으로 모성사망률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김종현 교수는 "산부인과 전공의가 감소해 산부인과 의사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며 "고위험 산모는 조기에 발견해야 하고 협진이 가능해야 제대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 기능을 다 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복지부 개선안, 산부인과 감소 속도 늦출 뿐"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뒤늦게 인식해 개선 대책을 내놨다. 지난 달 30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필수의료 서비스 개선책의 일환으로 보고한 '산모·신생아를 위한 안정적 분만진료체계 구축'이 그것이다.
내용을 보면 분만 취약지역 내 분만산부인과 설치 지원을 올해 5개소에서 내년 9개소, 2014년 12개소로 확대하고, 지역별로 고위험분만 통합치료센터를 운영해 취약지 의료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35세 이상 고령산모는 자연분만 수가를 30% 가산하고 신생아 중환자실 기본입원료를 최대 100%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경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닫는 산부인과를 방지하기 위해 연간 분만 건수에 따라 ▲1~50건 200% ▲51~100건 100% ▲101~200건 50% 분만수가를 가산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분만 건수가 연 200건 정도는 돼야 산부인과가 운영 가능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산부인과 쪽은 이번 개선안이 그나마 산부인과의 감소속도를 늦출 뿐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은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그나마 산부인과 의사가 줄어드는 속도는 늦출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산부인과 의사가 나오지 않는데 큰 효과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복지부가 '산부인과학회 의견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실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 사무총장은 "당초 학회가 요청한 것은 연 분만건수 에 한정을 두지 않고 가산 하는 것"이었다며 "200건이 넘더라도 가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만인프라 확보 위해선 의료사고 부담 완화-수가 현실화 시급 산부인과 측은 분만의료체계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소송 부담을 덜어주고 수가가 현실화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산부인과 지원 기피현상이 바로 이 두 가지 이유이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오수영 교수는 "분만의료체계를 살리려면 근본적으로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면서 "바로 수가 현실화와 소송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이 두 가지가 해결돼지 않으면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나아지지 않고 분만인력 부족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외국의 경우 의료소송이 많지만 수가가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송이 많은데도 수가는 낮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산부인과의 발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오 교수는 "현재와 같은 산부인과 기피 현상과 인력부족이 지속되다보면 결국 산부인과의 발전이 더욱 더뎌질 수 있다"면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결국 과학기술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신정호 고려대의대 교수는 "고령산모가 증가하고 모성사망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더욱 질 높은 산부인과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분만의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분쟁조정법과 포괄수가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부인과학회가 지난 6월 산부인과 전문의 5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분만관련 근무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무과실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보상금 재원 마련의 부담을 일부 지우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이 시행될 경우 산부인과 의사 10명 중 8명은 분만을 아예 포기하거나 포기를 고민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에서 여자 전문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오 교수는 "의사 부족이 서울 등 대도시는 심하지 않고 지방은 심한 상황인데 이는 남자의사가 부족한 것이 큰 문제"라며 "결혼 후 여성 특성상 지방보다 도시를 더 선호하고 분만 등 수술같은 시술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인데 산부인과는 여성 편중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산부인과 진료에서는 접근성이 중요한데 지역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취약지역의 의료수준 격차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 중 남녀 비율은 1대 9수준이며, 한해 배출되는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10명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다.
의료경영 컨설팅 임배만 에이치엠엔컴퍼니 대표이사도 "특히 지방은 전문의를 더욱 구하기 어려운데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여의사 비율이 많다는 것"이라며 "여의사의 경우 지방에 내려가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전문의 채용여건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