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하는 질문 중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이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이다. 없다라고 대답하면 얼마나 건방져 보일까? 우리의 역사책을 보면 누구를 평생 사표로 삼고, 누구를 평생 존경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전공하거나 옛날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학자행세를 하는 사람은 마음 속에 누구 하나는 품고 있어야 되는 듯한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나는 마음 속에 사표로 삼고, 걸음걸이 하나 말씨 하나까지 배워야 하겠다고 추종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건방지게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존경하는 사람은 수백, 수천명이 넘는다. 다만 그들의 전인격을 존경하고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장점, 한가지 행동이라도 존경하고 존경할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들의 잘못과 오류, 단점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분들을 비난하고 흠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교훈은 잘한 일을 통해서도 실수와 오류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단점도 보고 오류도 보는 것이 그 분들이 세상에 남긴 교훈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계승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없다. 완전을 추구하면 오히려 사람에게서 실망하게 된다. 역사 속에서 누군가를 골라 그에게 의탁하게 되면 그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 그와 대립했던 사람은 모두 악이거나 못난 사람이 된다. 역사가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하는 행동이 이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하고, 우리의 자산이 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지, 인간을 판정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 말이 역사 속의 인물과 행동에 대해 잘잘못을 평가하지 말고, 가치중립적 내지는 양면적 가치라는 궤변으로 논쟁과 책임을 피해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인간을 분석하고 판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방적 기준, 단선적 기준이어서는 - 역사상의 어떤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의 입과 눈을 빌린 기준일지라 하더라도 - 오류와 기만만을 양산할 뿐이다.
한 사람에게 의탁해서는 안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사람의 장점과 단점이라는 것이 시기와 환경에 따라 양과 질 모두 변하기 때문이다. 인물이나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도출할 때는 그는 진실했다. 그는 남보다 빠르게 행동했다는 식으로 뻔한 교훈을 도출하고, 사전적 정의에 얽매이는 것이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상황에서 그의 행동이 어떠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는가를 찾고, 분량과 약효를 측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아버님이 번잡하지 않고 아담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신 덕에 그리고 사람들 관찰하고 예측하는 것이 소년시절부터 내 취미였던 관계로 나는 사람들의 행동을 참 많이 보았다. 교회에서도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누가 제일 믿음이 좋고, 누가 제일 훌륭한 신도이며, 누가 교회에 일군인가라는 질문이 항상 존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열을 매기고 싶어한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과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 도덕적으로 행실이 바른 사람 중 누가 더 훌륭한 성도냐는 물음도 끊임없이 떠 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런 질문은 우문 중의 우문이며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엉뚱한 기준을 만들어 사람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비방하고 업신여기는 구실이나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신앙의 습관이나 가정환경은 다양하고, 그에게 불어닥치는 환경도 다양하다. 실제로 어떤 상황이 닥치면 그런 것들은 총체적으로 조합이 되서 어떤 측면에서는 강도가 높아지고, 어떤 측면에서는 약점이 크게 노출된다. 좋은 목회자가 되려면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 판별하고, 약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도움의 방법을 정확하게 찾아 주어야 한다.
이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아니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개발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부터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힘드니 내가 그냥 베낄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신앙생활이든 사업이든 학문이든 그렇게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숨 쉬기 힘들다고 숨을 안쉴 수도 없듯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서 끊임없이 배우고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 것은 그냥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일상이자 일상적 의무이다.
누군가를 앞에 세우려고 하지 말고, 주변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고,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면 가끔 냉정하고 가혹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것도 엄청난 오류이다. 주자를 제외하고 송시열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조광조였다. 그렇다면 조광조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 조광조와 성격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적이거나 하류인간이 된다. 이처럼 가혹한 인간 분류가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고, 모든 사람에게서 단점과 실수를 발견하려면 먼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과 인간의 장단점에 대한 개방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존경한다면 그의 단점을 찾아야 한다. 그를 비방하고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세상에 남긴 공적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 임용한의 역사 여행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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