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에 대해서
워싱턴에 갔더니 링컨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았는 데
그만큼 미국인들이 링컨을 존경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레퍼런스는 역시 구글과 위키디피아 나무위키 그리고 한국 역사 고전 연구소 블로그의 임용한 선생님 글 입니다.
--> 워싱턴에 있는 링컨 메모리얼. 가장 좋은 위치에 엄청나게 크게 있다.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
그 옆 벽면에 이런 말이 써있다. 영어 잘 못 하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해석을 해보면
'여기 이 성전에 미국을 구원한 국민들의 마음에 아이브라험 링컨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링컨은 미국 16대 대통령이지. 뭐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최초의 공화당 대통령이고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항상 조사를 하면 미국 대통령 중 앞의 3 손가락 안에 꼽히지.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가끔 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게 1등을 뺏기기는 해도 3등도 안하는
거의 미국에서의 대중적인 신뢰도나 영향력은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가 안 되.
링컨 전 까지 미국은 그냥 느슨한 ‘주(state)의 연합체’ 였다고 하던데 링컨 때를 거치면서
'these United States are' 가 'the United States is' 로 단수로 바뀌었다고 해.
자칫 분열 될 뻔한 미국을 통합시킨거라고 보면 되지.
아마 링컨이 아니였으면 지금의 미국은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처럼 분열 되어 올망졸망한 별 볼일 없는 나라가 되었을 거라 생각해.
참고로 미국의 역사가 1776년 부터 시작 된 것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이후라고 해.
그 전 까지는 1789년 워싱턴 대통령의 임기 시작 부터 미국의 역사의 시작으로 보았다고 하더군.
쉽게 이야기 해서 만일 '인도라고 하면 간디' 혹은 '우리나라 라면 이순신' 정도일거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미국 친구를 만나서 ( 이원복의 먼나라.. 같은 거를 읽고) 좀 잘난 척 하면서 링컨에 협잡꾼이니 말 바꾸기 달인이라거나 하며
어쩌구 저쩌구 하며 링컨을 깨는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 급격히 차가와 질 수 있어. 조심해야 되
--> 수염 없을 때의 링컨. 잘 생기기는 커녕 좋은 인상도 아님.
--> 11살 베델이라는 소녀가 권유해서 기르기 시작한 수염. 결국 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고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
링컨은 그 당시 깡촌인 컨테키 주 ( 켄터키 프라이드로 유명한 ) 에서 태어났어.
참고로 링컨은 독립 당시 있었던 13주 이외에서 처음으로 배출된 대통령이지.
당연하게 그곳은 당시 몹시 시골 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지
집은 워낙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고 하는 데 사실 너무 시골이어서 친구도 없었나봐.
집도 잘 살 지 못하고 해야될 일이 많아서 인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부 보다도 노동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하지.
별로 공부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거지. 이웃사람들이 ‘애 좀 그만 좀 부려먹으라’ 고 충고했다니 얼마나 일을 시켰는 지 알 수 있지.
그래서 학교는 커녕 공부도 할 수 없었데. 물론 책도 읽을 시간이 없었을테고. 당연히 친구도 별로 없어서 1살 터울인 누나와 친하게 지냈다고 하네.
실제로 링컨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누나가 새엄마가 올 때 까지 1년 정도를 돌봐주었다고.
아무튼 그의 친 어머니는 그가 10살 때 돌아가시지.
주위에 사람이 없으니 그에게 친엄마 처럼 돌봐 주던 그 누나는 아마 친구 이상이었을거야.
그래서 아버지가 재혼을 하는 데 그 분도 애가 3 딸린 과부였지 (그래서 링컨의 아버지는 더 가난해 졌다고 해 ㅋ)
아버지가 죽은 어머니처럼 링컨에게 공부가 아닌 농사와 노동의 길을 강요하며 생계의 짐을 지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새 어머니 사라는 책을 좋아했던 링컨에게 공부 할 수 있는 여건을 해 주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지지해 주었데.
우리가 위인전에서 보았던 먼 곳 까지 가서 책을 빌리고 책을 읽고 좋아하던 링컨의 모습은 사실 친 어머니가 죽은 뒤 일이지.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만 이런 모습은 신데렐라, 장화홍련, 콩쥐팥쥐 등등의 계모 설화와 완전 반대지.
생모는 원래 좋은 엄마고 계모는 나쁜 엄마라는 이분론적 사고는 사실 맞지 않아. 원래 나쁜 사람이 계모가 되었으니 나쁜 엄마가 된 거지.
실제로 아동 학대를 하는 사람 중 친부모가 더 많아..
아무튼 링컨은 새 어머니 덕분에 비록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그 좋아하던 책을 맘껏 읽어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을 쌓게 되어
생각도 깊어지고 넓어지게 되지.
링컨은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어. 위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원래 생모 처럼 그의 아버지도 지식보다는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 했다나.
그 이유에서인 지 링컨은 자기 자식들에게 무척 인자한 아버지였다고 하네. ( 사실 이러기 쉽지 않지 )
링컨은 어렸을 때는 무척 게을렀다고 하는 데 그 후 집안의 잡일을 열심히 하고 그래서 힘이 세져서
나중에는 동네 폭력짱이랑 레스링 시합도 했다고 하니..
암튼 링컨은 알려진데로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그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어.
생계를 위해 안해본 것이 없다고 하는데 우체국장 뱃사공 측량기사를 했고 심지어 프로레슬링 선수도 했다고 하니 말 다했지.
사업도 2번이나 말아드시고.
그러다가 처음으로 선거에 나가는 데 본인의 첫 선거였던 일리노이 주 의원선거에서도 13명중 8위를 하지.
그러다가 간신히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834년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하여 드디어 정치 생활을 시작해.
하지만 일리노이 주 의원 의장에는 낙선하시고 또 1840년 대통령 선거인단으로도 낙선 하지
1844년에는 아예 하원 의원 선거가 아니라 당의 공천에도 탈락하다가 드디어 1846년에야 간신히 하원의원에 당선되지.
그 때 그의 나이 37세이니 당시로서는 엄청 늦은 것이라 하네.
하지만 다시 불운은 계속되어 1855년 상원의원에 낙선하고 1856년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윌리엄 데이튼에게 낙선한다.
1858년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시 유명정치인이었던 스티븐 A. 더글러스 ( 이 분 잘 기억할 것, 뒤에 또 나옴 ) 와 경쟁을 벌이는 데
물론 이 선거에서도 링컨은 낙선하지만 노예 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밝혀 대표적인 노예제 폐지론자로 우뚝 서게 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되.
( 청문회 때 유명해 지고 지역 감정에 대항하다가 낙선한 누구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 스티븐 더글러스
목소리 좋고 근육 좋고 인물 좋고 출세도 빨랐는 데 링컨 보다 키가 작아서 (?) Mary 를 뺏김
1860년 공화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등록하는 데 당시 공화당의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정말 기적적으로 공화당 후보로 당선이 되지.
( 국회의원을 겨우 1.5 -두번이지만 한 번은 보궐 선거- 하시고 국회의원 떨어지시고 아무 직책도 없이 극적으로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신
뭐 누군과와 진짜 비슷하지 않음? )
하여튼 그의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전력을 살펴보면 ( 손수건 준비 )
'두번의 큰 사업 실패,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8번 의 선거 중 6번 낙선 그리고 10살 때 어머니의 죽음 20살 때 누나의 죽음,
27살 때 사랑했었던 약혼자의 죽음 42 살 때 둘째 아들을 잃지'
사실 나도 예전에 가까이서 지인 선거를 본 적이 있는 데 이거 한 번 떨어지면 정신을 못 차리지. 그냥 이상해져. 근데 6번이나 떨어졌다니 참 .
사실 아내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데 악처였다는 소문이 많은데 뭐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사실 부부 관계에 대해서 밖의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사실 그의 아내 메리도 그의 형제들 중 다수가 남부군 출신이고 실제로 남북전쟁 중 죽기도 했다고 하니 좀 힘이들었을 수도 있지.
남편이 북부군 총 사령관이니 감정이 미묘했겠지.
당시에도 황색 찌라시들이 많았는 데 아무튼 이런 것들을 좀 과장되게 표현 한 것은 맞는 거 같음
혹시 링컨이 초등학교도 안 나왔는 데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다고 조금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지만
그 당시 미국은 워낙 인구 밀도가 낮아 교육 받은 사람이 마을에서 손을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정말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갔다고 하네.
변호사도 법대를 안 가고도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좀 익숙해 지면 본인이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수도 있었다고.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좀 안 될 듯 해. 아무튼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서도 촌뜨기라고 맨날 무시 당하기는 했지
결국 1860년, 노예제 문제로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던 상황에서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북부 민주당 ( 스티븐 더글러스) 과 남부 민주당 ( 존 브레킨리니) 으로 갈라지면서 링컨으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던 거지.
당시 스티븐 더글러스는 노예제를 각 주의 선택에 맡겨야한다는, 민주당 출신치고 나름대로 중립적인 발언을 해서 브레킨리지를 대표로 한 남부 출신 인사들이 미움을 산것이 결정적 요인.
또 이 선거는 당선자의 득표율- 링컨의 득표율-이 40%를 넘지 않는 (39%) 유일한 선거였다고.
물론 선거인단 투표는 이것 보다는 훨씬 높지. ( 180:123 ).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긴 하지.
대통령 선거 시 비교하는 건 얻은 선거인단이니.
참고로 링컨의 평생 정적이었고 – 정치적으로나 연애로나 – 민주당 후보였던 더글러스는
막상 남북 전쟁이 나자 북군 편에 서서 의용군도 모집하고 그랬다니 좋은 사람 같아
링컨의 용인술
키가 190 cm 가 넘었고 몸무게가 72kg 정도였다고. 몹시 깡마르고 얼굴은 잘 알려진데로 못 생겨서 인기가 없었다고.
한 소녀 - 위에서 언급한 베델 - 가 수염을 길러서 못 생긴 얼굴을 가리면 더 나을 거라고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지
참고로 그의 평생 정적이었던 더글러스는 아주 잘생긴 외모에 단단한 근육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당시 정치적으로도 잘 나갔는 데 키가 작어서 그런 지
Mary 를 사귀는 와중에 그녀를 링컨에게 뺏기고 만다 ( 아무리 생각해도 링컨의 승리 이유는 키 밖에 없는 듯 )
링컨은 남부 출신에 사투리가 심하고 예의도 별로 없어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시도 때도 없이 웃기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이 웃을 때 까지 계속 이야기를 했는 데 주위사람들이 많이 곤혹스러워했다고 (실제 그 분도 그랬다고 .. 암튼 썩개의 원조 )
물론 지금 남아있는 자료들은 성공한 개그만 기록하였기에 꽤 웃긴 것도 많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더글러스와의 논쟁중에
‘링컨은 두개의 얼굴( being two-faced )을 가지고 있다’
라고 양면성에 대해서 공격을 하자
링컨은
‘ 내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이 얼굴로 돌아다니겠습니까?’
라고 대답을 했다고.
더글러스 쪽에서는 회심의 공격이었고 뭐라고 링컨이 반격하면 다시 반박하려고 이야기를 꺼냈는 데 더글러스는 완전히 전의 상실을 했다고.
또 한 가지 썩개를 보면
더글라스가
‘링컨은 금주령 때 술집을 운영했습니다.’ 라고 공격하자
‘그 때 제 최고의 고객이 더글라스 였습니다.’
라고 바로 반박했다고.
아무튼 링컨은 형식이나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 같지는 않고 실제로 많은 연설문을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지.
아무래도 자기가 쓴 글을 읽을 때 더 생동감 있고 실감나겠지. 누구도 좀 배웠으면 좋겠네.
연설의 대가라고 알려진 케네디도 연설문도 누가 대신 작성해 줬다고 하지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영어 공부 하고 싶은 사람들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한 번 읽어보기를 원해.
성문 종합 영어 예문 정도의 분량인 272 단어인데 진짜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려.
빨리 읽으면 3분이면 되고 그 중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은 다 알테니 그 건 덤 어렵지 않을 듯.
여기서 링컨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 께
링컨이 일리노이 – 참고로 일리노이의 가장 큰 도시가 시카고야 - 주에서 변호사를 할 때의 일이야.
그 때 그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해서 변호사로서의 명성은 얻었는 데 아직은 전국구 변호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
그때 오늘날로 치면 애플과 삼성의 특허권 소송 정도의 메머드급 특허권 소송사건이 발생했어.
존 하딩이라는 변호사가 한 회사의 변호사로 선정이 되었는 데 재판이 링컨이 있는 일리노이 주에서 벌어지게 되었지.
하딩은 일급 변호사들로 일정을 짜면서 판사의 성향을 알기위해 일리노이 주의 현지 변호사를 고용하기로 하였는 데 이때 링컨이 선발 되었어.
그래서 우리의 성실한 링컨은 소송을 열심히 준비하게 되.
그런데 일이 안 될려고 그랬는 지 중간에 재판 장소가 뉴욕 북쪽의 커네티컷 주의 신시내티로 변경되었어.
링컨이 필요 없게 된 거지 하지만 하딩의 로펌은 이 사실을 링컨에게 통보해 주지 않았어.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링컨은 ‘기회는 찬스다’ 라고 생각하며 일생일대의 기회를 잘 이용하려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하는 데
재판 당일날 신시내티행 기차에서
그의 동료 변호사 스탠턴 ( 이 사람 뒤에 또 나오니 기억 바람 )을 만나게 되.
링컨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 뭉쳐서 함께 재판정으로 들어갑시다’ 라고 말하는 데..
하딩과 스텐턴의 입장에서는 링컨이 좀 뻔뻔하다는 생각을 했겠지.
아마도 시골뜨기 변호사가 전국적인 명사로 구성된 팀에 합류하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스텐턴은 링컨을 외면하며 하딩쪽으로 가서 ‘ 저 긴팔 원숭이는 왜 데려 왔어?’ 라고 물었다네.
하딩은 링컨이 쓸모없게 되었다고 통보하고 그간의 보수는 다 지급하겠으니 돌아가라고 박정하게 이야기 했지.
보통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학벌도 없고 배경도 없다고 나를 이렇게 무시해?’
라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잘난 사람들을 저주했을거야.
아마 나 같으면
‘아이고 더러워’
‘ 너네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냐?’
‘ 잘난 너네끼리 잘 해먹어라’
하면서 뛰쳐 나왔을 거야.
하지만 링컨은 그들을 예정대로 따라갔고 묵묵히 재판의 전 과정을 경청했데.
링컨은 진심으로 스탠턴의 변론을 경청했다고 하네
그 후 평생에 이런 훌륭한 연설은 처음 들었다고 자신의 친구에게 말을 했데. 그리고 일리노이 주에 가서 다시 법률 공부를 하겠다고 했데.
친구가 다시 무슨 말이냐고 묻자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지금 일류대학을 나온 저들의 변론을 들으니 과연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교육 받은 사람이 과연 다르다.
돌아가서 다시 공부하겠다’
아마 나 같았으면 술만 마시며 그들을 저주하며 재판에서 그들이 지기를 엄청 바랐을 것 같아.
아무튼 링컨의 장점은 진정으로 이기는 법을 아는 것 같아.
적을 이기려면 적을 비난하고 꼬투리를 잡는 것이 나리라 적이 가진 장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거나 더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지.
링컨은 조금의 사심도 없이 적과 라이벌 자신의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모든 사람들로 부터의 장점을 배우는 태도를 지녔고 진정으로 탄복하면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받아드렸지.
그렇게 링컨은 대통령이 되었고 초인류의 지식인과 정치인을 모두 굴복 시켰다고 볼 수 있지.
말이 굴복이지 링컨은 이미 그들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들에게 모욕을 주거나 복수 할 필요도 없었지.
위에서 언급한 애드원 스탠턴이라는 사람은 실제로
‘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러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리노이 주에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라고 링컨의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자주 했다고.
사실 스탠턴과는 노예제에 대한 생각이 링컨과 같아서 주위에서 같이 일하라고 했는 데 스탠턴은 시골뜨기 링컨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하지.
때문에 스탠턴은 주위에서 링컨과 같이 일하라는 이 이야기에 몹시 화를 냈다고 하던데.
다른 것도 아니고 생김새 가지고 – 나 같으면 못 참는 데 - 이렇게 링컨을 놀렸던 사람인데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그의 능력을 높아 사
링컨은 대통령이 되자 남북 전쟁 때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한다.
물론 그의 측근들이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고 한다.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겠어.
그리고 실제로 링컨 말도 잘 안 들었다고 해
사실 초기 링컨 내각을 보면 윌리엄 수워드 국무장관, 샐먼 체이스 재무장관, 에드윈 스탠턴 국방 장관 등 능력있고 자존심 강한 인사들로 가득 차는데 수워드는 사실 상 미국 공화당 창당의 1등 공신이었던 사람이라 경선 때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고 본인 자신도 촌뜨기 링컨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링컨의 국무 장관 제안을 받아드렸다고 .
물론 링컨도 수워드의 생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하지.
또 다른 경선 라이벌인 체이스 역시 입각 전후로‘링컨은 비천하고 교활한 촌뜨기’ ‘ 빼빼마른 무식한 놈’ 같은 악언을 퍼붇으며 자신이 링컨보다 뛰어난 인물이라는 점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고.
그렇지만 이러한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입각한 후 남북 전쟁 시 국가 운영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게 되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지.
참고로 오바마가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부시 정부 때 부터 국방 장관이던 로버츠 게이츠를 계속 시키는 데..
링컨을 따라 한 것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데.
오바마가 흑인 중 최초로 대통령이 된 것은 사실 링컨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오바마가 링컨 코스프레를 많이 했지.
하지만 그 결과는 뭐 별로..
그 분도 대연정을 설파하면서 정권을 나눌 수 있다고 말 한 것이 아마 링컨의 이러 부분을 따라 한 게 아닐까 생각함.
뭐 본인도 링컨을 존경한다고 했고 링컨과 연관된 책을 쓰기도 했지.
사람이 자기 합리화에는 선수여서 어떤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하면 어디에선가 반드시 그 합당한 이유를 생각해 내는 데
우리 링컨은 그것을 이겨 낸 사람..
나는 이것 만으로도 링컨을 존경해야 된다고 생각해.
가끔 인터넷이 링컨이 말 바꾸기를 잘 했다, 사기꾼이다 이런 말이 많지만 사실 사회 운동가도 아니고 정치가가 말을 교묘하게(?) – 라고 쓰고 세련되게 라고 읽어- 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해야 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들도 아우르려면 타협은 못하더라도 말은 조금 달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아무튼 사실 내가 못하는 영어로 좀 읽어보니 그 정도 하는 거 정말 쉽지 않을 거 같아. 정치인은 이론가가 아니자나?
물론 그 정치인의 다른 장점이 그것을 덮을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막 쓰다보니 길어졌네. 중간에 버린 글들도 많고.
아무튼 개인적으로도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링컨을 좀 닮아서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시키면서 훌륭해 졌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