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른이 되고 싶어요 - 퍼옴 -

다린이아빠 2010. 12. 19. 23:43

 

딴지 일보 산하님의 글입니다. SBS 긴급출동 SOS 의 PD 님입니다. 방송 중 못하신 이야기 중 일부인 것 같은데 한 번 읽어 보세요

 

년 전의 일입니다. 까마득하지만 선명한 일종의 실패담이에요. 즉 방송을 타지 못한 일입니다. 인천 어느께에 4남매가 살았어요. 맏딸은 스무살, 막내는 열 살, 그 사이에 중고생 둘이 박힌 그런 4남매였어요.  그들의 소식을 알려 온 건 동네 교회 목사 사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애초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사람이었고, 엄마는 빚쟁이에 몰려 집에 들르지도 않는다 했죠.  사모님이 가장 가슴 아파 한 건 막내였어요.  

“맏언니는 노래방 도우미 나가는 거 같아요.  갔다 와서 내내 자는 거 같고 둘째와 셋째는 학교도 제대로 안 가고 자기들 놀기 바빠요,   막내가 너무 불쌍해요.  밥도 제대로 먹고 다니질 못해요. 학교 급식 밖에는 걔가 제대로 먹는 끼니가 없는 거 같아요. 툭하면 형이나 누나한테 맞는 거 같고.”

그 방 (집이 아니라 단칸방이었어요)은 둘째와 셋째의 친구들로 들끓었고 담배 연기로 너구리 몇 마리는 잡을 거 같았어요.  술병도 심심찮게 보이구요.  성질 같으면 확 뒤집어엎고 원산을 폭격시키고 싶은 것들이 그 방을 아지트삼아 뒤덮고 있더라구요. 보아하니 컵라면도 끓여먹는 거 같고, 과자 봉지도 나오는 거 봐서 막내가 그렇게 굶는 거 같지 않다고 얘기했다가 사모님한테 혼이 났죠.  

  “말씀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컵라면 끓여먹으면 막내한테 한 젓가락이라도 가는 줄 알아요  아다시피 그 집은 부모 없는 애들 놀이터예요.  애들 열 댓명이 그 골방 안에서 놀고 있다구요.  어떻게 그 라면 먹지 않냐고 나한테 따질 수가 있어요 PD란 사람이. 걔 오래 걷지도 못해요. 학교 갔다 돌아오다가 지쳐서 우두커니 길거리에 앉아서 쌕쌕거리는 거 보면 눈물만 나는구만. ”

그 싸늘함이라니.... 언젠가 선배가 보여줬던 얼음장보다 더했어요. 사모님의 그 낮고 조곤조곤한 서릿발을 생각하면 등줄기가 식어 올 정도니까.  정황을 보아하니 정말 그렇더군요.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는 맏이는 밤 늦게가 아니라 아침 늦게 돌아와 부족한 잠 보충하기 일쑤였고, 학교 날나리로 소문난 둘째와 셋째는 자기 친구들과 놀기 바빴죠.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가 없는 막내는 비썩 곯아가고 있었어요.  애가 코피를 흘리는데 아무도 그걸 닦아 주지 않아서 이 서툰 손으로 애 코를 틀어막았다니까요.

내가 가장 분격했을 때는 “빚쟁이에 쫓겨 집에 못 들어온다는” 안타까운 사연의 그 엄마라는 ‘년’이 또래의 남자랑 그 집에서 300미터 거리에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을 때예요.   무려 2년 동안 그 300미터 거리에서 엄마라는 년은 한 번도 집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빚쟁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핑계꺼리일 뿐이었죠. 그 새 남자라는 수컷과 엄마라는 허울의 암컷에 대해서 야 이 잡것들아 욕을 퍼붓지 못한 건 내 평생의 한으로 남아있지만서두, 그때 난 그 여자에게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

“다 떠나서 당신 (취재 대상자에게 이런 말 쓰지 않죠.  하지만 그때는 썼어요) 막내는 챙겨야 할 거 아닙니까.  당신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 대가리 큰 애들이야 제 먹을 것은 제가 챙긴다 치고 막내는 무슨 죄란 말이오.”

 그 엄마라는 암컷, 변명은 청산리 벽계수였어요,  큰딸 도우미 해서 번 돈 달래서 가져간 거 까지도 내가 뻔히 아는데 도우미 하는 거 몰랐다면서 땅을 치질 않나, 둘째 셋째도 공부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며 한탄하질 않나, 거기에 막내 얘기를 할 때는 그저 눈물 바람이었더라구요.  모르긴 뭘 몰라 온 이 집 사정은 온 동네에 화제였고 엄마를 만나 그 얘기를 해 줬단 마을 사람들이 1개 분대였는데요.

  막내는 또래 아이들보다 10센티미터 이상 작았어요. 아무래도 영양 부족 탓인 거 같았죠.  아이가 안심하고 먹는 끼니라곤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  그리고 방학 때는 급식 대신 나오는 쿠폰이라고 했습니다.(이 쿠폰을 형이나 누나가 뺏아간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이럴 때 우리가 상투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죠.  
“우리 철훈이는 커서 뭐 되고 싶어?”

이정희 의원이 만난 난곡의 아이는 “수급자”라고 장래 희망을 대어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지요? 그렇듯 이 질문에는 참 다양한 그리고 예상외의 대답이 나와요. 대통령부터 연예인까지 골고루 출연하고, 어떤 여자 후배는 “나도 누나 같은 PD가 되어서 나 같은 아이들 도와 줄래요.” 하는 기막힌 멘트를 따 와서는 귀에서 썩은 내가 날 정도로 자랑을 해 대곤 했지요.  철훈이의 답도 예상 밖이었어요.  푹 소리가 나도록 내 허를 찔렀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하하 크면 다 어른 되는 거잖아.”
“아저씨 저는 어른이 되는 게 소원이에요.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 것 같거든요.”

순간 재갈이라도 문 거 같았어요.   꼬질꼬질한 이마와 콧물이 말라붙은 코 사이에서 촛불처럼 가물거리는 아이의 눈동자 앞에서 흡사 결혼 하루 앞두고 파혼 선언 받은 남자처럼 말문이 막히고 말았어요.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죠. 한 방을 단단히 먹은 복서가 허우적거리며 양팔을 휘두르듯 “네가 죽기는 왜 죽어?  보니까 백 살까지 살겠다, 임마.” 하면서 과장되이 눙칠 수 밖에요.  그때 헤 하면서 입 벌려 웃는 아이의 표정 참 오랫 동안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듯 했어요. “이렇게 90년을 더 살라구요?”  

애를 싸질러 낳기만 하고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엄마, 제 피붙이 동생을 챙기기는 커녕 자기 친구 돈가스 대접하려고 동생에게 새우깡 한 봉지 사 주고 쿠폰 뺏아 가는 형, 누나를 다 엎어놓고 곤장을 치고 싶은 마음 사태같이 일었습니다.  김황식 총리의 발언을 빌어 “복지 문제는 가정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국격” 이라고 할 때, 국격 하나 장히 망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가정이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밥 먹을 권리를 챙겨야 하는 건 아무리 부인해도 나라일 겁니다.  이러다가 5백년 뒷면 한국인이 없어진다고 설레발 까면서 낙태 규제 강화를 대책으로 삼을 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면, 어떤 교수는 “건강이나 경제상의 불가피한 이유 없이 출산을 기피하는 행위에 대해 부담금을 물리자“고 기염을 토하는 나라라면 최소한 아이들의 배만큼은 채워 주겠다고 나서는 게 국격 아니겠어요.  아니 이건 격에 해당하지도 않지요.  이건 염치입니다. 사람에게만 아니라 나라에도 염치가 있어야 하는 거죠,  

무상급식 못하겠다고 파업해버린 서울 시장의 반들반들한 낯짝도 참아주기 어려운 판에 국회에서는 철훈이 같은 아이들의 밥값이 날아갔습니다.  날치기 예산안에서 날아가 버린 각종 복지 비용 항목 가운데에서 눈이 덫에 걸린 듯 움직일 수 없었던 게 결식아동 지원금 5백4십억, 이 항목이에요.  이제 방학이 시작되면 철훈이는 어디서 밥을 얻어먹어야 할까요.  세월이 흘렀고 걔도 중학생이 되었을 테니 제 밥은 알아서 챙겨먹을 깜냥이 되었으니 괜찮을까요.  또 다른 철훈이는 없을까요.  배가 고파서 방학이 싫은 아이들은 없을까요. 어른이 되어 보는 게 소원인 아이들은 “형편에 따라 복지를 즐길” (윤증현 장관 왈) 수 있을까요.  무슨 앙토와네트도 아니고 “급식이 없으면 세계화된 한식을 먹으라”는 건가요.  기회 닿으면 이번에 예산 받아 국모님이 여신다는 뉴욕의 한식당에 초대라도 해 주시겠다는 건가요.    


괜히 울컥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남자와 붙어 띵가띵가하면서 딸이 도우미로 번 돈까지 통장으로 부치라 하던 그 엄마와 이 나라가 그렇게 크게 다를까요.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치사한 지 서슴지 않았으면서도 명심보감을 줄줄 외고 공맹을 들먹이며 인간과 금수의 차이를 논하던 옛 양반들처럼, 말끝마다 국격을 따지고 공정을 들먹이면서 왕년에 풀빵도 팔아봤다고 눈물도 지을 줄 아는 분께서 이끄는 정부의 염치가 이 모양이 되어서는 안될 텐데 말입니다.

일 가는데 눈이 꽤 왔습니다.  다행히 풀리긴 했지만 그제 어제 정말 추웠죠.  이 눈과 추위가 지옥인 분들, 내가 만났던 참 많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제 옆자리에 왔다가 뒷자리에 누웠다가 사라집니다.  철훈이도 있네요.  어른이 되는 게 소원이었던 아이. 철훈이도 어른이 되어야 하지만, 정작으로 어른이 되어야 할 사람은 이 나라가 아닐까 해요.  디자인 예산 깎으면 알아서 하라고 눈 부릅뜨면서도 애들 밥값은 몰라라 하는 다섯 살 시장도 제발덕분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형님 예산과 여사 예산에 애들 밥값이 나가떨어지는 나라도 어서 철이 들고 어른스러워져야 할 테니까요.  

선배 인사를 제대로 못했네요.  묵은 해 잘 정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 나라 국민으로서 “형편껏” 받아야 할 복인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