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쟁을 하자는 사람들을 보며
최근 여러가지 사건이 많았는데 그 중 나를 제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 전쟁 불사론' 이다.
( 선거 끝나고 좀 잦아 들긴 했다 )
참 전쟁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던데 과연 그 사람들 중 자기 아들이 군대에 있어도 저런 말을 할까? 궁금하다.
챨리 채플린은
'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나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든 살든지 해야한다'
라고 이야기 했다던데
그런데 아무튼 과거 조선 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니 역사는 그래서 반복된다는 이야기를 듣나보다.
여기 역사학자 임용한의 글을 소개한다
( 시대적 배경은 병자 호란 때이다 )
1637 년 ( 인조 15년 ) 1월 30일, 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 의식을 했다. 의식은 별 탈 없이 끝났지만 인조에겐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 있었다.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나라 인질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예조참판 정온은 할복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항복하는 날에도, 청나라가 건국 9년만에 명나라를 정복하는 그날까지도 척화파의 꼿꼿한 주장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판단착오를 사과하는 법도 없었다.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그들은 청군이 왜 조선을 침공하는 지도 몰랐다. 만주에서 일어난 세력이 중국을 침공할 때 먼저 한반도를 공략해 자신들의 배후를 안정시킨다는 것은 수천년 동안 지켜온 전략이었다. 거란의 침공과 여진 전쟁이 그래서 일어났고, 삼국사기에도 이런 전략적 구조에 대한 해설과 깨달음이 쓰여 있건만 그들은 몰랐다.
조선 침공은 했지만, 청나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원이어서 조선을 직접 지배할 마음은 커녕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략과 목적을 모르니 조선은 청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청 태종이 남한산성 아래까지 와서 막사를 쳤지만 척화파는 황제가 왔을 리가 없다고 우겼다. 게다가 청군이 항복을 요구하자 ‘ 이건 성 밖으로 끌어내 몰살시키려는 음모 ‘ 라고 확신했다.
끝까지 항복을 반대하는 척화신에게 식량이 떨어지고, 성벽이 파괴된 상태에서 어떻게 싸울것이냐고 묻자 그들은 전술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들은 싸우러 나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투는 장수와 병사들의 몫이었다. 대신 매일 오늘쯤 적군이 방심했을 테니, 어제 승리로 오늘 자만했을 테니, 이제 충분히 지쳤을 테니 등의 이유를 대며 야습을 하자, 식량 창고를 기습하자, 청태종의 막사를 급습하거나 자객을 보내 암살하자는 별별 제안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장수들이 거부하면 비겁하다고 욕하고, 그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싸우러 나갔다가 패배하면 지휘를 잘못했다고 비난을 쏟아부었다.